아버지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지금 모습부터 생각납니다. 식탁 한쪽에 앉아 뉴스를 보거나, 통화 끝에 늘 몸 조심하라는 말을 붙이는 사람. 그런데 가끔 궁금해집니다. 저 사람도 내 나이였을 때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날 밤에 잠을 못 잔 적이 있었을까. 실패하고도 다음 날 다시 나간 이유가 있었을까.

부모님의 경험은 오래된 사진첩에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지금 자식이 겪는 고민과 닿는 순간, 그 경험은 다시 쓸 수 있는 연료가 됩니다.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마음 안에는 지난날을 보관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오늘을 견디는 데 필요한 문장을 찾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습니다.

아버지 이야기가 필요한 순간

부모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출발점이 꼭 효도에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한 20대 창업준비생은 아버지의 전성기 이야기를 궁금해했습니다. 요즘 왜 무기력한지보다, 예전에 어떤 얼굴로 일을 키웠는지, 낯선 곳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지금의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는지가 더 궁금했던 겁니다.

창업을 앞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성공담의 결말보다 그 중간을 지나온 사람의 감각일 때가 많습니다. 처음 손님을 기다리던 마음, 돈이 비어 가는 통장을 보며 했던 계산, 그래도 포기하지 않게 만든 작은 확신. 그런 이야기는 먼 곳의 강연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물어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전성기는 가족에게도 낯설다

자식은 대부분 아버지의 전성기를 모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거나, 반대로 힘이 빠진 뒤의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올릴 때 현재의 말수, 현재의 표정, 현재의 습관만 남습니다.

스페인에서 사업을 키웠던 시간, 첫 거래를 따내려고 몇 번이나 발걸음을 돌렸던 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믿어야 했던 계절.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버지는 조언하는 어른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먼저 길을 지나간 사람에 가까워집니다.

저는 여기서 글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일은 지금 내 앞에 놓인 문제를, 나보다 먼저 비슷한 두려움 속에 서 있었던 사람의 언어로 다시 보는 일입니다.

조언보다 장면을 물어보기

아버지에게 곧장 “저한테 조언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대화가 딱딱해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부담을 느끼고, 자식도 원하는 말을 기다리게 됩니다. 처음부터 답을 구하기보다 그때의 장면으로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아빠가 처음 일을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은 날 기억나?”
“그때 제일 무서웠던 건 뭐였어?”
“그래도 계속해보자고 생각하게 만든 순간이 있었어?”
“내 나이 때 아빠한테 누가 해줬으면 좋았을 말이 있어?”

“그땐 그냥 해야 했지”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한 번만 더 물어보면 됩니다. “그냥 해야 한다고 느끼게 한 게 뭐였어?” 대답은 조언처럼 정리되어 나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말하다 보면 그 시절의 가게 문, 공항의 냄새, 처음 받은 전화 한 통 같은 것들이 따라 나옵니다.

이번 통화에서 하나만

이번 통화에서는 길게 준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질문 하나면 충분합니다.

“아빠는 내 나이 때, 뭘 믿고 버텼어?”

아버지가 잠깐 웃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믿긴 뭘 믿어, 그냥 했지”라고 말할 수도 있고요. 그럼 그 말에서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그냥 해야 했던 날들이 모여 지금의 아버지를 만들었을 테니까요.

부모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앱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매일 질문 하나와 음성 답변 하나로 이런 대화가 이어지길 바란다면 나무가 나뭇가지에게에서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아버지가 젊었을 때 믿고 버틴 것이 내 하루 어딘가에 조용히 남습니다.